인더뉴스 이진솔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면서 뒤를 이어 삼성을 지휘하게 될 이재용 부회장에게 관심이 쏠립니다. 각종 재판에 줄줄이 엮인 상황에서 시스템 반도체와 바이오 등 미래 사업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가 ‘이재용 시대’의 시작을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당장 변수로 ‘사법 리스크’가 꼽힙니다. 삼성은 지난 3년 동안 경영권 승계 및 무노조 경영과 관련된 각종 수사와 재판을 받았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의혹 ▲박근혜 전 대통령 및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뇌물 공여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노조파괴 등 사건에 휘말린 상황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야하는 재판만 2개입니다. 먼저, 이달 ‘국정 농단’ 파기환송심과 불법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이 연달아 열렸습니다.
서울고법 형사 11부는 이재용 부회장 뇌물공여 등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 준비기일을 진행했습니다. 박영수 특검팀이 지난 2월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면서 9개월간 중단됐던 재판이 다시 시작된 겁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22일에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관련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 과정에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직접 관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음달에는 삼성물산의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항소심 선고가 열립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행정소송과 증거인멸에 대한 항소심도 진행 중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은 대법원판결을 앞둔 상황입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회장직에 언제 오르느냐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잇단 재판으로 법정 출두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회장 추대는 대외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삼성 사법 리스크가 단기간에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 ‘총수 공백’도 장기화할 전망입니다.
◇ “불확실성의 시대의 경영능력, 성과로 검증받아야”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자신의 경영 능력을 향한 외부의 의구심을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재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불확실성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룹을 지휘하게 됐다는 외부의 우려가 이 부회장에게는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실질적 총수로 자리매김한 현재는 故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이끌기 시작한 시점과 산업지형이 변했습니다. 제조업 중심이었던 198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인공지능(AI)과 5세대(5G) 이동통신 등 소프트웨어(SW) 및 플랫폼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기업이 전자산업을 이끄는 형국입니다.
달라진 상황에 걸맞는 ‘이재용식 경영’으로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시점입니다. 책 ‘삼성라이징(Samsung Rising)’을 쓴 제프리 케인(Geoffrey Cain)은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가 삼성이라는 거대한 배를 움직일 때 사용했던 카리스마와 비전을 드러낼 수 있느냐가 지금 해야할 질문”이라고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밝혔습니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018년 4대 미래성장사업 육성계획을 내놨습니다. AI·5G·전장부품·바이오 등에 올해까지 18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선두에서 멈추지 않고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로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비전도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들어 현장 경영을 확대하며 반도체와 바이오 관련 중장기 대책을 모색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최근에는 베트남 연구개발(R&D)센터 공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선대 회장이 남긴 과제를 이재용 부회장이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결국에는 모든 것은 성과를 통해서 증명해내야할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