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겸임교수] 중국 제약업계에 빅뱅이 밀어닥쳤다. 전체 제약회사의 3분의 1이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제약에 대한 ‘문법(文法)’이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대지진에 비유될 만큼 혁신적인 의약 개혁이다.
최근 중국 국무원은 ‘평가 및 허가 제도 개혁을 통해 의약품과 의료기기 개혁을 고취하기 위한 의견(약칭 의견)’을 발표했다.
칭화(清华)대학 법학대학원 위생법연구중심은 의약품 제조와 생산방식, 유통체계 등을 40년간 연구해온 기관이다. 이 연구중심의 줘융칭(卓永清) 연구원은 중국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외국 연구자들로부터 수많은 문의 전화와 이메일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물음은 ‘현재 중국 제약업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모아졌다고 전했다. 중국 제약업계의 지각 변동은 세계 제약업계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는 매머드급 ‘쓰나미’이기 때문이다.
중국식품약품감독관리총국(식약감총국·CFDA)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모두 433개의 신약이 출시됐다. 이 가운데 중국 시장에 진출한 신약은 100여 종에 불과하다.
국가신약심사위원회 심의위원인 주쉰(朱迅)은 “신약 부분에서 중국은 유럽, 미국, 일본 등 제약 선진국에 한참 뒤져 있다. 심지어 일부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못하다”고 평가했다.
중국 자체의 신약개발도 저조하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CFDA가 비준한 신약은 화학약 13개와 생물약 16개 등 모두 29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해외시장에 진출한 신약은 없다.
게다가 환자가 구입할 수 있는 국외 신약도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이미 사용된지 6~7년이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정도의 간격이면 중환자에게는 생과 사를 가를 수 있는 시간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경제력을 갖춘 중국인들은 막 출시된 신약과 최신의 치료방법을 구매하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의견’은 바로 중국인들의 이런 갈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정책적이고 법률적인 수단이다. 우전(吴浈) CFDA 부국장은 “의견의 제목에 정부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 바로 제도 개선을 통한 혁신 장려다”라고 강조했다.
줘융칭 연구원도 “‘의견’의 격이 매우 높다. 이는 중국 지도층이 의약 심사와 허가제도의 개혁을 정치적 임무로 격상시켰음을 의미한다. 국내 제약회사들에게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외국 신약의 중국 진출이 지체되는 원인은 의약허가제도 자체에 있다. 외국에서 개발된 신약이 중국에서 판매되려면 중국 영토에서 동일한 임상실험을 반복해야 한다. 이미 시행돼 효능이 입증된 실험을 다시 한번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험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사전에 CFDA로부터 시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비용과 시간을 물 쓰듯 사용한다. 임상실험이 성공해도 문제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늦어도 한달 내에 신약 허가가 떨어지지만 중국의 경우 1~2년은 보통이다.
이런 문제점은 중국 제약회사에도 피해를 준다. 신약연구의 효율과 진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임상실험 결과는 약품 가치의 유일한 척도다. 하루라도 실험이 빨리 실시되면 하루라도 빨리 환자들이 그 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생명수와도 같은 자금을 그만큼 일찍 회수할 수 있다. 이는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신생 기업에게는 한층 더 절박한 문제다. 상당수의 중국 제약회사들이 조기 임상실험을 호주나 한국에서 진행하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말에 ‘지중난판(积重难返)’이란 말이 있다. 오래된 적폐는 고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유일한 처방전은 혁명에 가까운, 단계적 개혁일 수밖에 없다.
첫 시동은 2015년 8월에 걸렸다. 국무원은 ‘약품과 의료기기에 대한 심사 및 허가제도 개혁에 대한 의견(약칭 44호 문건)’을 발표했다. 첫 개혁 버튼을 누른 셈이다. 문건의 핵심은 ‘적자생존’ 네 글자로 요약된다. 고속 질주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적응과정이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제약사들이 휘청거렸다.
당시 CFDA는 임상실험에 대한 본격 실사에 착수했다. 제약업계는 이를 ‘7∙22 참사’라고 부른다. 중국 제약사의 민낯이 남김 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에 올랐던 2033건 가운데 1316건의 신약신청이 철회됐다. 제약사 스스로가 신약의 효능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부정한 수단을 통해 허가를 받아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사례다. 허가 대기 목록에 남아 있는 나머지 신약의 임상실험사례를 조사한 결과 실험 데이터를 조작한 경우가 38건이나 발견됐다. 제약업계는 “조작 사례가 38건이면 대단한 규모”라고 평가했다.
44호 문건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신약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당초 중국에서 신약의 개념은 ‘중국 국내에서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약품’이었다. 그러나 44호 문건에서는 신약을 ‘중국 국내외에서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약품’으로 재정의했다. ‘외’자 한 글자의 차이지만 그 의미가 주는 차이는 대단한 것이었다.
2016년에는 ‘출시허가인 제도’를 실시했다. 지금까지는 신약심사에 연구기관의 평점만 반영했으나 여기에 연구진의 성과와 업적까지를 포함시킨 것이다. 신약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조치다. ‘우선심사약품제도’도 선보였다. 신약적 가치가 큰 약품을 우선적으로 심사하겠다는 얘기다.
CFDA는 또 ‘정책건의함 제도’를 마련했다. 해외에서 개발된 신약의 중국 진출을 용이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청취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내 신약 개발과 출시를 글로벌 수준에 맞추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지난해 6월 CFDA는 마침내 ‘인체사용 약품의 등록과 기술적 협조를 위한 국제위원회(ICH)’에 정식 가입했다. 이 조직은 약품의 품질과 안전성 그리고 유효성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정해 등록 약품의 범용성과 과학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협의기구다.
주쉰 위원은 “이는 무역으로 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의 무게와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ICH 가입은 중국의 약품 심사 및 평가 시스템이 국제 수준과 궤를 같이 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 진세근 서경대 문화콘텐츠학부 겸임교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