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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칼럼

[율곡로에서] 전두환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묻는 후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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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23, 2021, 19:11:24

 

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소대장, 조장의 화가 풀릴 때까지 몽둥이로 맞았고 단체기합을 받았다. 강요로 구강성교를 한 사실도 있다. 낚시공장에서 바늘에 줄을 감는 일을 했고 운동장에서 돌 깨는 작업을 했다. 추운 겨울에 마대자루에 돌을 담아 매고 다닐 때 힘들었다. 노역의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 3차례 도망가다가 잡혀서 많이 맞았다. 맞아서 죽은 사람을 여러 명 봤고, 상처를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은 사람도 봤다.” -형제복지원 수용자 A(당시 12세, 1982년~1987년 수용)

 

“이사한 집을 찾지 못하여 부산역 근처 파출소에 가서 집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형제복지원으로 보냈다” -형제복지원 수용자 C(당시 12세, 1981년 수용)

 

“열차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경찰에 의해 부산역 근처 파출소로 끌려가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다” - 형제복지원 수용자 D(당시 20세, 1979년 2월~8월 수용)

출처:검찰 과거사 위원회

1931년 1월 생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만큼 전 대통령이란 호칭은 생략하고 전두환이란 고유명사로 지칭하겠습니다.

 

전두환의 사망 소식을 확인하며 후배들의 느낌이 궁금해 물어봤습니다. '나쁜 사람이 죽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는 잘 모르는 눈치들이었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광주 5·18민주화운동 때 민간인들을 죽였으며 끝내 반성하지 않았다' 정도였습니다.

 

8~90년대 태어난 후배들은 전두환의 독재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거나 독재를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 시절 한국사회에 어떤 국가 폭력이 자행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되었던 그 시절의 모습만 어렴풋이 알 뿐입니다.

 

전두환이 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폭력에 기반한 공권력을 통해 초법적인 공포를 조장했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앞장서 불법적인 폭력을 조장했고 방임했고 무소불위로 휘둘러습니다. 국민들은 공권력 앞에서 굴종하고 굴욕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더러는 생명을 위협받았고 무고하게 죽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전두환 독재정권이 당시 한국사회 내 불법적인 폭력을 어떻게 방조했는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18년 10월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가 내린 ’형제복지원 사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산 북구에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인 형제복지원의 원장 등이 공모하여 1986년 7월경부터 1987년 1월경까지 경남 울주군에 있는 울주작업장에서 경비원과 감시견을 동원하여 수용자들에게 석축공사 등 강제노역을 시키고, 도망하거나 일을 하지 않으려는 수용자들을 목봉으로 폭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가하였으며(그 중 일부 수용자는 폭행으로 사망하였음), 부산 북구청으로부터 시설 운영비 및 구호비 등의 명목으로 받은 보조금을 횡령한 것에 대하여, 수사검사가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행위(당시 수용자 3000여 명) 전반을 수사하려고 하였으나 검찰 지휘부, 정부, 부산시 등의 외압에 의하여 축소 수사를 하게 되었고, 축소된 공소사실마저 법원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된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2월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조사단의 진상보고서를 통해 일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시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수용자 연평균 약 3200명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형제복지원 원장의 개인 목장, 운전교습소 등의 토지 평탄작업, 국유림 벌목작업, 울주작업장 석축작업. 낚시․재봉․스텐공장 작업 등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들은 중대, 소대, 조 등 군대식 체제로 편성되어 온갖 신체적 정신적 학대와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형제복지원 발간자료 및 신민당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연도말 수용자 합계 인원 2만1685명 대비 사망자 513명으로 수용자의 2.4%가 사망했습니다, 특히 1985년 말 무렵에는 수용자 3011명 대비 사망자 89명, 1986년 말에는 수용자 3164명 대비 사망자 95명으로 사망률이 3.0%에 이르렀습니다. 약 500명이 넘게 형제복지원 내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전두환 독재정권의 실상을 극명히 보여줍니다. 먼저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수용인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수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전두환은 1981년 4월 88올림픽 개최를 위한 도시 정화를 목적으로 당시 국무총리에게 “근간 신체장애자 구걸행각이 늘어나고 있는바, 실태파악을 하여 관계부처 협조 하에 일절 단속 보호조치하고 대책과 결과를 보고해 달라”고 지시합니다. 그 직후인 4월 20일부터 8일간 연인원 1만9300여 명의 공무원이 투입되어 1850명의 부랑인이 단속되었습니다.

 

 

문제는 실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수용자들은 가족 등 연고자가 있고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던 사람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수용자 중에는 ‘막차를 놓쳐 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던 사람, 직장을 구하러 부산에 왔던 사람, 술에 취해 역 대합실 등지에서 잠을 자던 사람, 저녁에 귀가하던 학생, 집을 찾지 못하는 어린아이 등’이 있었고 이들은 박정희 독재시절 만들어진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의하더라도 수용대상인 부랑인이 아니었습니다.

 

즉 전두환 독재정권의 대한민국은 법률 근거 없이 국민들을 도시정화 등의 미명하에 형제복지원에 강제구금한 후 강제노역을 비롯해 폭행 등 가혹행위로 사망하는 일을 방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인 경찰은 국민들의 강제구금에 앞장서 나섰고 부랑인이 아닌 이들이나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까지 단속해 형제복제원에 수용시켰습니다.

 

형제복지원의 반인권적인 수용과 강제노역 및 인권유린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의 참상은 1986년 말 울산지청의 한 검사가 울주지역의 산을 등산하다가 우연히 수용자를 발견하면서 실상이 드러났습니다. 이후 언론과 야당의 폭로가 더해져 형제복지원은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수사를 관할하는 부산지검 등 검찰 지휘부는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인권침해 수사를 무산시키려 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에 대한 횡령에 대한 수사를 중단시키려고 외압을 가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원장이 횡령한 금액이 확인된 액수만 10억 원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7억 원 이하로 공소장을 변경했습니다.

 

훗날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진상조사에서 전두환은 법무부장관에게 검찰이 쓸데없는 일을 했냐며 박 원장을 풀어주라는 지시를 했다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재판에 넘겨진 박인근은 건축법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만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솜방망이' 선고를 받고 형을 산 뒤 풀려났습니다. 특수감금 혐의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이는 박인근이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1981년과 1984년 ‘부랑아 퇴치 공로’로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2018년 10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심의결과’ 발표를 통해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에 대한 수용개시가 법률에 근거하지 않으며 과도하게 기본권을 제한하여 위헌·위법함을 확인했다”며 “수용자들이 부랑인이 아님이 명백한 경우에도 위법하게 감금하였으며, 감금된 수용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고 폭행, 가혹행위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당시 검찰이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형제복지원 울주작업장에 대한 수사과정에서는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수사, 원장의 횡령에 대한 수사 등을 방해하거나 축소하였으며, 형제복지원 본원에 대한 수사는 시작도 하지 않아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지연시켰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과거 정부가 법률근거 없이 내무부훈령을 만들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가혹행위로 인권을 유린했다”고 인정 한 뒤 “피해사실이 밝혀지지 못하고 현재까지 유지되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마음깊이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과거 정부가 바로 전두환 독재정부입니다. 

 

 

전두환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공이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공을 평가하기에 앞서 전두환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공화국의 국민들을 어떤 방식으로 유린했고 어떤 식으로 공권력의 폭력을 조장하고 방임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이를 알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전두환 본인이 스스로 이에 대해 사과하고 사죄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고 알려야 합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한국사회의 은폐된 실상입니다. 이 사건 외에도 숱한 인권유린과 국가폭력사건이 재임기간 중 자행되었습니다. 전두환의 독재를 시민의 힘으로 저항해 물리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승리고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 됐습니다. 

 

경제발전 없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입니다. 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의 실상을 우리는 중국을 통해 봅니다. 전두환은 한국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지연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공권력의 폭력을 자행했고 공권력의 폭력을 통해 시민들에게 굴종을 강제했습니다.

 

후배들에게 전두환 시절은 그저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과거의 지나간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의 독재는 불과 한 세대 전에 한국에서 자행되었던 현실이었고 그때 국가 폭력에 고초를 겪고 희생을 당한 이들은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그 시절, 독재권력의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이성과 지성의 노력입니다. 진보는 이에 대한 믿음입니다. 때문에 찬찬히 형제복지원 사건 외에도 전두환 시대의 국가 폭력과 독재의 참상을 상기하고 또다시 상기합니다. 이번만큼은 후배들에게 설령 꼰대소리를 듣는다해도 개의치 않겠습니다.

 

 

5·18광주민주항쟁, 삼청교육대, 부림사건, 부천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외 숱한 대학생들의 죽음, 청계피복노동조합 탄압, 땡전뉴스 등등등.

 

▶ [In the News Column] To a junior who asked what mistake Chun Doo-hwan 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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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기자 lucky@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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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국권 상실 되풀이 없다…반도체·AI·에너지로 새 100년 연다”

이 대통령 “국권 상실 되풀이 없다…반도체·AI·에너지로 새 100년 연다”

2025.08.15 13:22:59

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반도체·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을 축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 120년 전 을사년의 국권 상실을 되풀이할 수 없다”며 "반도체·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을 축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공급망 재편, 첨단기술 경쟁, 기후위기 등 복합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며 "힘들더라도 반걸음 앞서가면 무한한 기회를 누리는 선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반도체·AI 등 전략산업 집중 육성 ▲에너지 고속도로 등 인프라 전환 가속화 ▲문화산업 글로벌 확장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대외관계에서는 일본과의 실용 협력 기조를 유지하되 신뢰를 전제로 한 '미래지향적 상생'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은 경제 발전에 있어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라며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하면 AI 시대의 도전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신뢰 훼손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흡수통일론을 폐기하고 적대행위 중단을 천명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남북은 원수가 아니며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며 "9.19 군사합의를 단계적으로 복원하고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교류·협력 기반을 회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이 대통령의 광복 80주년 경축사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5,200만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80년 전 오늘, 우리는 빼앗겼던 빛을 되찾았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감격으로 환하게 밝힌 그 빛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방에 대한 불굴의 의지, 주권회복의 강렬한 열망으로 스스로를 불사른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일궈낸 것이었습니다. 광복절은 단지 독립을 이룬 날이 아닙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미래를 정하고, 우리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되찾은 날입니다. 지난 80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눈부신 성취를 이뤘습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고, 군사력 5위, 경제력 10위권 선진 민주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존경하는 김구 선생이 염원했던 문화강국의 꿈도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우리말로 노래 부르고, 영화, 드라마, 만화, 문학 등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즐기고 있습니다.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독립투사들과 애국선열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기원을 생각한다는 말처럼,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것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응당한 책임입니다. 자랑스러운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리고, 독립유공자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두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외면한다면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과연 누가 공동체를 위해 앞서 나서겠습니까? 공동체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치르신 분들에 대하여 예우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 공동체도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독립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그리고 기록하고,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갈 것입니다. 생존 애국지사분들께 각별한 예우를 다하고, 독립유공자 유족의 보상 범위도 더 넓히겠습니다. 해외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을 더욱 적극 추진하고, 서훈을 받지 못 한 미서훈 독립유공자들을 찾아내 모두가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굴곡진 역사는 '빛의 혁명'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빼앗긴 빛을 되찾고, 그 빛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3.1혁명의 위대한 정신이 임시정부로 이어졌고, 한반도 삼천리 방방곡곡을 넘어, 온 세계에서 독립투쟁의 불길로 번지며 마침내 우리는 다시 빛을 되찾았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독재의 엄혹한 추위 속에서도 소중한 빛을 지켜내 왔습니다. 4.19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으로 민주화의 빛을 환하게 밝혔고, 세계사에 없는 두 번의 무혈 평화혁명으로 이 땅이 국민주권이 살아있는 민주공화국임을 만천하에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빛의 혁명'은 일찍이 타고르가 노래한 '동방의 등불'이 오색 찬란한 응원봉 불빛으로 빛나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의 소중함을 알았고, 빛이 있기에 어둠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광복으로 찾은 빛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도록, 독재와 내란으로부터 지켜낸 빛이 다시는 꺼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냅시다. 그것이야말로 '빛의 혁명'의 진정한 완성이며,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 화답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선조들은 고난 속에서도 부강한 나라,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동양의 평화를 역설했고, 침략의 아픔에도 높은 문화의 힘을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분단은 이 간절한 염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분단 체제는 국토를 단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장벽이 되어 우리 국민들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은 분단을 빌미 삼아 끝없이 국민을 편 가르며 국론을 분열시켰습니다.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국민주권을 제약하는 것도 모자라 전쟁의 참화 속으로 우리 국민을 몰아넣으려는 무도한 시도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 안의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조들이 바라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이라는 것이 지난 80년간 우리가 얻은 뼈저린 교훈입니다. 분열과 배제의 어두운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바꿀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언제나 위기 앞에서 작은 차이를 넘어 더 큰 하나로 뭉쳐왔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을 딛고 목숨 바쳐 독립을 쟁취해 낸 것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산업화를 이뤄낸 것도, 금 모으기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것도, 그리고 무장병력을 동원한 내란에서 헌정질서를 지켜낸 것도 바로 우리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는 우리 국민들의 이러한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문화도 바꿔야 합니다. 정치가 사익이 아닌 공익 추구의 기능을 회복하고,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끝낼 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갈등과 혐오의 장벽도 비로소 사라질 것입니다.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선조들이 바라던 부강한 나라, 함께 잘사는 나라, 국민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갑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분단으로 인해 지속되어 온 남북 대결은 우리 삶을 위협하고, 경제발전을 제약하고, 나라의 미래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낡은 냉전적 사고와 대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적대 상태의 지속은 남과 북 주민 모두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가 흔들릴 때 어떤 불행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 가혹할 정도로 체험했습니다. 평화는 안전한 일상의 기본이고,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경제 발전의 필수조건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보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평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숱한 부침 속에서도 이어지던 남북 대화가 지난 정부 내내 완전히 끊기고 말았습니다. 엉킨 실타래일수록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가야 합니다. 먼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집니다. 국민주권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정부는 실질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취해나갈 것입니다.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닙니다.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그 과정의 특수관계라고 우리는 정의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이 정신은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입니다.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가능한 사안은 곧바로 이행해 나갈 것입니다. 우선,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특히,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습니다. 나아가 공리공영·유무상통 원칙에 따라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교류 협력 기반 회복, 그리고 공동성장 여건 마련에 나서겠습니다. 광복 80주년인 올해가 대립과 적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갈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기를 인내하며 기대하겠습니다. 한편으로,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이며, 주변국과 우호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한반도입니다.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합니다. 남북, 그리고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혀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올해는 광복 80주년인 동시에 한일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한·일 양국은 오랫동안 굴곡진 역사를 공유해 왔기에 일본과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는 늘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입장을 달리하는 갈등도 크게 존재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독립지사들의 꿈을 기억합니다. 가혹한 일제 식민 지배에 맞서면서도 언젠가는 한·일 양국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선열들의 간절한 염원을 이어가야 합니다. 일본은 마당을 같이 쓰는 우리의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60년 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양국 국민 간 왕래는 1만여 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연간 1천2백만 인적 교류의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우리의 국력 또한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산업 발전 과정에서 함께 성장해 왔던 것처럼, 우리 양국이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협력할 때 초격차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도 능히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원칙으로 셔틀외교를 통해 자주 만나고 솔직히 대화하면서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협력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신뢰가 두터울수록 협력의 질도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럴 때 서로에게 더 큰 공동 이익과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믿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주권자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공급망 재편과 통상 질서의 급격한 변화, 첨단기술 경쟁에 따른 산업대전환, 기후위기로 인한 에너지 전환의 이 복합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합니다. 한미 관세협상은 하나의 파도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또 다른 파도들이 시시각각 밀려올 것입니다. 급변하는 질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가 흔들리고 국민의 삶이 위협받게 됩니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치이다가 마침내 국권을 빼앗겼던 120년 전 을사년의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습니다. 2025년 을사년은 그때와 달라야 합니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난파될 것인가, 위기를 기회로 바꿔 다시 도약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현재 우리 자신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걸음 뒤처지면 고단한 추격자 신세가 되겠지만 힘들더라도 반걸음 앞서가면 무한한 기회를 누리는 선도자가 될 것입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과학 기술을 육성하여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에너지 고속도로를 비롯한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여 미래를 앞장서 열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도 더욱 갈고 닦아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선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100년의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되찾은 자주독립의 빛이, 우리 국민들이 이룬 민주주의의 빛이 우리의 앞날을 밝히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의 저력이 다시 발휘된다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걸어왔던 것처럼, 우리가 나아갈 길도 잃지 않고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이 가득한 나라, 국민주권의 빛이 꺼지지 않는 나라로, 국민 여러분, 함께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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