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주동일 기자ㅣ 만화 ‘데스노트’의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는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를 개조해 안에 데스노트(이름이 적힌 사람을 죽게 하는 공책) 조각을 넣어 다닙니다. 그가 양면 다이얼을 가진 리베르소를 알았다면 비싸기로 소문난 명품 시계를 뜯는 수고는 안 해도 됐을 겁니다.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는 다이얼을 오른쪽으로 밀어 뒤집으면 새로운 다이얼이 나타나는 시계입니다. 해외여행 중엔 각 다이얼에 여행지와 출발지의 시간을 설정해둘 수도 있죠. 이 때문인지 예거 르쿨트르는 리베르소를 ‘하나의 무브먼트, 또 하나의 세상’이라고 묘사합니다.
◇ 배트맨·반 고흐·베를린 영화제·롯데타워 품은 시계
사실 리베르소가 처음부터 양면 다이얼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건 아닙니다. 처음엔 뒷면에 다이얼 대신 철판을 댔습니다. 격한 운동 등을 할 때 철판이 있는 뒷면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뒤집어 시계 다이얼과 유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죠.
리베르소는 스위스 사업가 세자르 드 트레이가 1930년 여행 중 얻은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말을 타고 채로 공을 치는 폴로 경기를 하다가, 한 영국군 장교의 시계가 폴로 스틱에 부딪혀 깨진 것을 봤습니다.
세자르는 격한 운동 중에도 깨지지 않는 시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자르의 친구이자 예거 르쿨트르의 창립자 자크 다비드 르쿨트르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다이얼을 뒤집을 수 있는 반전 케이스 발명자 ‘르네 알프레드 쇼보’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다이얼을 뒤집어 뒷면의 보호 철판을 바깥으로 뺄 수 있는 첫 리베르소를 1931년 개발했습니다. 배트맨 시리즈의 주연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은 해당 영화에서 항상 리베르소를 차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 기념판 리베르소 뒷면 역시 배트맨 로고가 새겨진 보호 철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낮엔 사업가이지만 밤엔 배트맨으로 활동하는 주인공 브루스 웨인에게 꼭 필요한 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브루스 웨인의 삶과 리베르소의 기원을 잘 반영한 시계이기도 하고요. 양면이 시계 다이얼인 리베르소는 1990년대에 들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예거 르쿨트르는 리베르소의 ‘양면성’을 활용해 여러 특별판 시계를 출시했습니다. 뒷면 다이얼을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자화상으로 장식한 ‘반 고흐 에디션’을 두 번에 걸쳐 내기도 했습니다.
또 베니스 국제 영화제 공로상 수상자에겐 뒷면을 ‘GLORY TO THE FILMMAKER’ 문구와 황금사자 심벌로 장식한 리베르소를 선물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김기덕 감독이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죠. 롯데 창립 50주년엔 롯데월드타워를 새긴 리베르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배우 이정재 씨가 JTBC 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리베르소를 차고 나왔습니다. 리베르소는 이 외에도 크리스찬 베일·맷 데이먼·제이미 폭스·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피어스 브로스넌 등 유명 배우들이 애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 무브먼트는 하나 뿐...폴로 부츠 장인이 스트랩 만들어
리베르소는 양면 다이얼뿐만 아니라 특유의 다이얼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리베르소는 1920~30년대 유행한 아르데코 스타일로 디자인해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입니다. 아르데코는 선·직각·원 등 기하학적 패턴을 살린 디자인 양식을 말하죠.
또 리베르소는 여성과 남성에게 모두 잘 어울리도록 중성적으로 디자인한 것이 특징입니다. 사각형 다이얼은 정면에서 봤을 때 직각이 도드라지지만, 측면은 곡선을 강조해 옆에서 봤을 때 원기둥처럼 보입니다.
이정재 씨가 착용한 핑크 골드 ‘리베르소 클래식 라지 듀오페이스 스몰 세컨즈’의 경우 다이얼 크기는 28.33×47mm입니다. 6시 방향엔 초를 알려주는 스몰세컨즈를 원형으로 배치했습니다. 리베르소 컬렉션의 핵심인 아르데코 양식을 강조한 것이죠.
앞면 다이얼은 실버 그레이 색이고 버티컬 브러시드 패턴과 기요셰로 마감했습니다. 뒷면 다이얼은 다른 시간을 나타내는 세컨드 타임존과 오전·오후를 구분해주는 24시간 인디케이터 기능이 있습니다. 다이얼 색상은 검은색이고 클루 드 파리 기요셰로 장식했습니다.
무브먼트는 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854A/2를 사용했습니다. 리베르소는 하나의 무브먼트로 양면 다이얼을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죠. 두 다이얼을 움직이면서도 시계가 두꺼워지지 않는 비결입니다. 크라운을 돌려 동력을 얻는 수동 방식으로 파워 리저브는 42시간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폴로 경기를 통해 탄생한 시계인 만큼, 1892년부터 가죽 폴로 부츠를 만들어 온 ‘까사 파글리아노’의 장인들과 함께 리베르소 스트랩을 제작한다는 겁니다. 리베르소 스트랩은 폴로 부츠에 쓰는 송아지 가죽으로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