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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앞날 걸린 ‘세기의 이혼’…대법원이 고심할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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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27, 2024, 14:06:17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소송
1심 뒤집은 2심…무엇이 판을 바꿨을까
경정에 재항고까지…재계·법조계 뜨거운 관심

 

인더뉴스 이종현 기자ㅣ"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이 단순한 파경을 넘어 재계, 법조계를 아우르는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종 재판 결과에 따라 현재 자산규모 약 330조원, 국내 재계 2위인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법원이 ‘세기의 이혼 소송’ 최종 판결을 어떻게 내릴지 갈수록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재벌가와 전직 대통령 가문의 이혼 소송이지만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한국 경제성장의 한 축인 기업의 역사와 흥망이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렇습니다.

 

이번 재판에서는 SK그룹의 재산 형성 시기와 주체, 자금의 흐름 과정이 핵심 쟁점입니다.

 

이중 판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가장 큰 쟁점이 최 회장을 어떤 형태의 사업가로 규정하느냐입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을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최 회장은 자신을 ‘승계 상속형’ 사업가로 각각 정의합니다. 통상적으로는 자수성가형 사업가의 이미지가 훨씬 좋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번 소송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돈으로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증명해야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2심 재판부가 최 회장을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비자금 300억원을 받아 그룹을 이끌어 온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노 관장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노잣돈으로 기업 성장을 일궜으니 노 관장에게 돌아갈 재산이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의 지분가치의 35%인 약 1조3800억원이라는 것이 2심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통장과 쪽지 한 장입니다. 또 2심 판결 후 최 회장측이 문제를 제기하고 결국 재판부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된 것이 100원과 1000원입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핵심 키워드와 힘께 주요 쟁점들을 짚어보았습니다.

 

■ 쟁점① 7분에 11km? 통장을 입증해라

 

최 회장 변호인 측은 2심 재판 변론 과정에서 은행 통장 하나를 입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이 통장에 입금된 돈이 아버지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입증하면 판결에 아주 유리한 입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1994년 5월31일 최종현 선대회장은 조흥은행 계좌에서 A은행으로 2억5000만원을 송금하고 3690만원은 현금으로 인출합니다. 총 2억8690만원으로 최태원 회장에게 물려 줄 목적의 돈이라는 겁니다. 5개월 뒤인 10월31일 최태원 회장은 자신의 제일은행 계좌에 현금과 수표로 2억8697만원을 입금합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돈으로 입금했다는 게 최 회장 변호인측 설명입니다. 차이는 7만원입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인 11월21일 최태원 회장은 유공 계좌에 2억8000만원을 입금합니다. 대한텔레콤(현 SK텔레콤) 지분을 취득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유공은 대한텔레콤 주식의 70%를 보유하고 있었고, 최 회장이 이를 전액 현금으로 취득한 겁니다.

 

대한텔레콤은 이후 SK C&C와 합병하고, SK C&C는 이후에 다시 SK(주)와 합병합니다. SK(주)는 그룹의 계열사 일정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입니다. 최 회장은 현재 SK(주)의 지분 17.7%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 회장은 대한텔레콤 지분 취득으로 결국 지주회사 SK(주)를 지배하게 되고, 이번 재판에서 SK(주)의 지분가치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됐습니다. 

 

문제는 재판부가 최종현 선대회장이 준 돈과 최 회장이 대한텔레콤 주식을 구매하는 데에 쓴 돈, 두 자금의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5개월의 시차, 7만원의 금액 차이 등의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11월 21일 당시 인출과 입금 과정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심에서 최 회장 측 변론 기록을 보면 11월21일 16시27분 제일은행 서울 석관동 지점에서 인출된 2억8697만원은 7분 뒤인 16시34분 조흥은행 서울 광교지점에서 최 회장 자기앞수표로 입금됩니다. 

 

두 지점 사이의 거리는 11km. 2심 재판부는 7분 안에 11km 떨어진 은행으로 현금을 옮겨 입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현금 계수기까지 등장합니다.

 

재판부는 인출 시 현금 계수기로 2회 반복 확인 작업을 했는데 1분당 1800매 이상을 세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100매 단위로 묶음띠 작업도 진행했는데 이 시간만 몇 분 이상 걸린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입니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두 자금의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최 회장 측은 당시에 현금을 옮기는 방식을 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석관동 지점에서 현금해약을 한 후 현금 계수 작업없이 조흥은행 광교지점 인근의 B은행으로 무통장 송금했다고 합니다. 이후 B은행에서 자기앞수표를 발행한 후 조흥은행 광교지점에서 유공 계좌로 수표 송금을 진행하면 4분대에도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최 회장 측이 A은행과 B은행이 어디인지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30년 전의 은행업무였던 데다 주거래 은행도 아닌, 해당 송금만 진행하기 위한 1회성 계좌였기 때문에 자료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이 돈의 동일성을 인정받아야 대한텔레콤 주식의 특유재산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이 아닌, 즉 결혼과 무관한 재산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통장 입금 내역은 물론이고, 은행 간의 거리와 입금 가능 시간, 계수기까지 등장시킵니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꼼꼼히 따져 묻고 검증하는 과정이 잘 드러납니다. 이 부분이 항소심 재판의 핵심 쟁정 사안 중 하나였습니다.

 

돈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 성장 자금의 기반이라는 논리의 수순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재판부는 7분에 11km 이동은 불가능하다며 최 회장 측의 소명에는 자연과학적으로 완벽한 증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노 관장측이 제시한 쪽지 한 장에 대한 증빙 과정은 어땠을까요?

 

■ 쟁점② 쪽지에 적힌 300억원이면 입증 충분?

 

노 관장 측은 항소심에서 노 대통령의 아내 김옥숙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작성한 쪽지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쪽지에는 전신인 '선경 300억원'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1992년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 약속어음 6장에 대한 사진도 증거로 제출하며 비자금 300억원이 존재했음을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 쪽지에 적혀있는 돈이 실제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됐고 사용된 지에 대한 검증은 보이지 않습니다. 최 회장 측이 제시했던 통장에 대한 입증과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재판부가 최태원 회장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주 세밀한 '현미경' 검증을, 노소영 관장의 주장은 원거리 '망원경' 검증을 했다는 일부의 주장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물론 최 회장 측은 이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쪽지의 경우 공식적인 문서가 아닐뿐더러 약속어음도 노태우의 퇴임 후 활동비 요구 시 지급을 보장해주기 위해 발행한 것이지 비자금을 돌려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최 회장 측은 "당시 교부된 약속어음은 노태우 대통령 퇴임 이후 활동비를 지원하겠다는 의미"라며 "비자금 유입은 전혀 입증된 바 없고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구체적인 물증 없이 일방의 메모와 약속어음 사진만을 핵심 증거로 놓고 판단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메모에 기재된 '선경 300억'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고, 통상 약속 어음은 발행인(선경그룹)이 소지인(노태우)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받았다는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비자금이 적힌 쪽지와 약속어음은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1988년) 이후 시기에 작성됐으므로 충분히 SK그룹이 비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SK의 지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 관장의 기여도가 인정되며 재산분할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쟁점③ 1주당 가치 100원과 1000원

 

또 다른 쟁점은 2심 재판부의 결정이 나온 직후입니다. 재산분할금액의 산정방식이 맞느냐는 논쟁입니다. 100원과 1000원의 등장입니다.

 

최 회장 변호인 측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2심 판결문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한텔레콤의 1994년 주당 가치를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는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에는 3만5650원으로 산정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재판부는 회사 성장에 대한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분을 12.5배로, 최 회장의 기여분을 355배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최 회장측은 "액면분할을 감안하면 주당 가치가 100원이 아니라 1000원이 돼야 하고, 이럴 경우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분이 재판부가 계산한 12.5배 보다 10배 늘어난 125배, 355배로 계산된 최 회장 기여분은 35.6배로 줄어들게 된다"고 계산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최 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재산 기여도는 이번 재판에서 재산분할 산정에 중요한 판정 기준입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을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최 회장은 자신을 '승계 상속형' 사업가로 각각 정의했습니다. 그룹 성장에 있어 최 회장의 기여도가 크면 재산분할 금액이 많아집니다. 재판부의 기준으로 보면 최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기반으로 자수성가했기에 아내인 노 관장에게 돌아갈 몫이 커지는 겁니다. 

 

2심 재판부는 오류를 인정하며 100원을 1000원으로 수정합니다. 하지만 판결내용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의 설명자료를 배포합니다. 근거는 적용 시점의 변경입니다. 재판부는 재산분할 기준시점을 2009년 11월에서 2024년 4월로 변경합니다. 올 4월 16일 기준 SK(주)의 주식 가격은 16만원입니다. 이 기준이면 최태원 회장의 기여도는 160배, 선대회장의 기여도는 125배가 됩니다. 배수는 변수가 되지 않고 둘 중 누구의 기여도가 크냐가 재산분할액의 기준이 됩니다.

 

이에 최 회장 변호인 측은 재판부에 몇 가지 질문과 해명을 요구합니다. 우선 추가 경정 여부입니다. 재산분할을 위해 비교 기간을 늘렸다면 이에 대한 판결문 내용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관계는 2019년에 파탄이 났다고 설시했는데 2024년까지 연장해서 기여도를 재산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오류 전에는 최 회장과 선대회장의 기여도 12.5 : 355를 기초로 판단했는데 125 : 160으로 변경했음에도 판결에 영향이 없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추가 경정 여부와 의문에 대한 2심 재판부의 대외적 공식 답변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재판부의 설명자료 중에는 방대한 판결문(206페이지)에 없던 내용도 포함돼 있어 '법정 밖 판결', '다른 법관(대법원) 재판에 영향 금지 문제 소지' 등을 지적합니다.

 

■ 상고에 재항고까지…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대법원

 

2심 재판부의 판결문 경정과 이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논란을 더욱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재판부가 판단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수치에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했음에도 왜 재산분할 결과는 변하지 않느냐는 점입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정재민 변호사(예문정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중대한 판결내용 변경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경정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 회장 측은 '손해액을 산정할 때 착오된 계산액을 기초로 해 과실상계를 했다면 이 잘못은 판결결과에 영향이 있어 파기사유가 된다'고 판시한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최 회장 측은 지난 20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습니다. 24일에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 경정에 대한 재항고장을 제출했습니다. 대법원은 이혼 소송 상고심과 경정에 대한 항고심을 별도로 배당해 각각 심리하게 됐습니다. 어찌보면 부부간 이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한 해 예산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의 자산규모를 지닌 기업의 앞날이 대법원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이 최 회장 측의 재항고를 인용하면 이혼 소송에 대한 상고심 심리는 경정 전 판결문을 토대로 진행됩니다. 반면 재항고가 기각되면 경정 판결문을 기초로 상고심이 진행됩니다. 대법원이 경정에 대한 재항고를 받아들일지, 어떤 법리를 적용해 판단할지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결은 예상보다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부간의 이혼 이면에 담긴 사회적· 경제적 맥락까지 고려하면 대법원이 신중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법원 판결이 지닌 무게감과 권위는 여타 판결과 다른만큼 재계와 산업계에서 최대한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대법원의 판결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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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기자 flopig200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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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국권 상실 되풀이 없다…반도체·AI·에너지로 새 100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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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5 13:22:59

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반도체·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을 축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 120년 전 을사년의 국권 상실을 되풀이할 수 없다”며 "반도체·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을 축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공급망 재편, 첨단기술 경쟁, 기후위기 등 복합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며 "힘들더라도 반걸음 앞서가면 무한한 기회를 누리는 선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반도체·AI 등 전략산업 집중 육성 ▲에너지 고속도로 등 인프라 전환 가속화 ▲문화산업 글로벌 확장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대외관계에서는 일본과의 실용 협력 기조를 유지하되 신뢰를 전제로 한 '미래지향적 상생'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은 경제 발전에 있어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라며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하면 AI 시대의 도전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신뢰 훼손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흡수통일론을 폐기하고 적대행위 중단을 천명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남북은 원수가 아니며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며 "9.19 군사합의를 단계적으로 복원하고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교류·협력 기반을 회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이 대통령의 광복 80주년 경축사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5,200만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80년 전 오늘, 우리는 빼앗겼던 빛을 되찾았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감격으로 환하게 밝힌 그 빛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방에 대한 불굴의 의지, 주권회복의 강렬한 열망으로 스스로를 불사른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일궈낸 것이었습니다. 광복절은 단지 독립을 이룬 날이 아닙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미래를 정하고, 우리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되찾은 날입니다. 지난 80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눈부신 성취를 이뤘습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고, 군사력 5위, 경제력 10위권 선진 민주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존경하는 김구 선생이 염원했던 문화강국의 꿈도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우리말로 노래 부르고, 영화, 드라마, 만화, 문학 등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즐기고 있습니다.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독립투사들과 애국선열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기원을 생각한다는 말처럼,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것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응당한 책임입니다. 자랑스러운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리고, 독립유공자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두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외면한다면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과연 누가 공동체를 위해 앞서 나서겠습니까? 공동체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치르신 분들에 대하여 예우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 공동체도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독립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그리고 기록하고,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갈 것입니다. 생존 애국지사분들께 각별한 예우를 다하고, 독립유공자 유족의 보상 범위도 더 넓히겠습니다. 해외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을 더욱 적극 추진하고, 서훈을 받지 못 한 미서훈 독립유공자들을 찾아내 모두가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굴곡진 역사는 '빛의 혁명'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빼앗긴 빛을 되찾고, 그 빛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3.1혁명의 위대한 정신이 임시정부로 이어졌고, 한반도 삼천리 방방곡곡을 넘어, 온 세계에서 독립투쟁의 불길로 번지며 마침내 우리는 다시 빛을 되찾았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독재의 엄혹한 추위 속에서도 소중한 빛을 지켜내 왔습니다. 4.19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으로 민주화의 빛을 환하게 밝혔고, 세계사에 없는 두 번의 무혈 평화혁명으로 이 땅이 국민주권이 살아있는 민주공화국임을 만천하에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빛의 혁명'은 일찍이 타고르가 노래한 '동방의 등불'이 오색 찬란한 응원봉 불빛으로 빛나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의 소중함을 알았고, 빛이 있기에 어둠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광복으로 찾은 빛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도록, 독재와 내란으로부터 지켜낸 빛이 다시는 꺼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냅시다. 그것이야말로 '빛의 혁명'의 진정한 완성이며,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 화답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선조들은 고난 속에서도 부강한 나라,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동양의 평화를 역설했고, 침략의 아픔에도 높은 문화의 힘을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분단은 이 간절한 염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분단 체제는 국토를 단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장벽이 되어 우리 국민들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은 분단을 빌미 삼아 끝없이 국민을 편 가르며 국론을 분열시켰습니다.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국민주권을 제약하는 것도 모자라 전쟁의 참화 속으로 우리 국민을 몰아넣으려는 무도한 시도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 안의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조들이 바라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이라는 것이 지난 80년간 우리가 얻은 뼈저린 교훈입니다. 분열과 배제의 어두운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바꿀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언제나 위기 앞에서 작은 차이를 넘어 더 큰 하나로 뭉쳐왔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을 딛고 목숨 바쳐 독립을 쟁취해 낸 것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산업화를 이뤄낸 것도, 금 모으기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것도, 그리고 무장병력을 동원한 내란에서 헌정질서를 지켜낸 것도 바로 우리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는 우리 국민들의 이러한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문화도 바꿔야 합니다. 정치가 사익이 아닌 공익 추구의 기능을 회복하고,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끝낼 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갈등과 혐오의 장벽도 비로소 사라질 것입니다.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선조들이 바라던 부강한 나라, 함께 잘사는 나라, 국민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갑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분단으로 인해 지속되어 온 남북 대결은 우리 삶을 위협하고, 경제발전을 제약하고, 나라의 미래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낡은 냉전적 사고와 대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적대 상태의 지속은 남과 북 주민 모두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가 흔들릴 때 어떤 불행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 가혹할 정도로 체험했습니다. 평화는 안전한 일상의 기본이고,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경제 발전의 필수조건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보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평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숱한 부침 속에서도 이어지던 남북 대화가 지난 정부 내내 완전히 끊기고 말았습니다. 엉킨 실타래일수록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가야 합니다. 먼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집니다. 국민주권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정부는 실질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취해나갈 것입니다.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닙니다.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그 과정의 특수관계라고 우리는 정의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이 정신은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입니다.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가능한 사안은 곧바로 이행해 나갈 것입니다. 우선,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특히,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습니다. 나아가 공리공영·유무상통 원칙에 따라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교류 협력 기반 회복, 그리고 공동성장 여건 마련에 나서겠습니다. 광복 80주년인 올해가 대립과 적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갈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기를 인내하며 기대하겠습니다. 한편으로,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이며, 주변국과 우호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한반도입니다.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합니다. 남북, 그리고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혀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올해는 광복 80주년인 동시에 한일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한·일 양국은 오랫동안 굴곡진 역사를 공유해 왔기에 일본과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는 늘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입장을 달리하는 갈등도 크게 존재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독립지사들의 꿈을 기억합니다. 가혹한 일제 식민 지배에 맞서면서도 언젠가는 한·일 양국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선열들의 간절한 염원을 이어가야 합니다. 일본은 마당을 같이 쓰는 우리의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60년 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양국 국민 간 왕래는 1만여 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연간 1천2백만 인적 교류의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우리의 국력 또한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산업 발전 과정에서 함께 성장해 왔던 것처럼, 우리 양국이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협력할 때 초격차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도 능히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원칙으로 셔틀외교를 통해 자주 만나고 솔직히 대화하면서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협력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신뢰가 두터울수록 협력의 질도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럴 때 서로에게 더 큰 공동 이익과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믿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주권자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공급망 재편과 통상 질서의 급격한 변화, 첨단기술 경쟁에 따른 산업대전환, 기후위기로 인한 에너지 전환의 이 복합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합니다. 한미 관세협상은 하나의 파도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또 다른 파도들이 시시각각 밀려올 것입니다. 급변하는 질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가 흔들리고 국민의 삶이 위협받게 됩니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치이다가 마침내 국권을 빼앗겼던 120년 전 을사년의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습니다. 2025년 을사년은 그때와 달라야 합니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난파될 것인가, 위기를 기회로 바꿔 다시 도약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현재 우리 자신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걸음 뒤처지면 고단한 추격자 신세가 되겠지만 힘들더라도 반걸음 앞서가면 무한한 기회를 누리는 선도자가 될 것입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과학 기술을 육성하여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에너지 고속도로를 비롯한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여 미래를 앞장서 열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도 더욱 갈고 닦아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선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100년의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되찾은 자주독립의 빛이, 우리 국민들이 이룬 민주주의의 빛이 우리의 앞날을 밝히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의 저력이 다시 발휘된다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걸어왔던 것처럼, 우리가 나아갈 길도 잃지 않고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이 가득한 나라, 국민주권의 빛이 꺼지지 않는 나라로, 국민 여러분, 함께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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