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 르노삼성자동차 노사가 1년이나 이어진 2018년도 임금 및 단체협상을 극심한 진통 끝에 마무리했다. 배치전환 절차와 근무강도 개선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해 온 노사는 서로 양보하며 합의점을 찾았다.
전면파업이 철회되고 직장폐쇄가 풀린 지난 12일, 르노삼성 노사는 2018년 임단협 2차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14일 이어진 노조의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서는 총 조합원 2149명 중 1534명(74.4%)이 찬성표를 던져 최종 가결됐다. 투표에는 2063명이 참여해 9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 29번 교섭, 2차례 찬반투표 끝에 타결...노조, 기본급 동결 대신 근로조건 개선 얻어
르노삼성 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총 29번을 만나 임단협 교섭을 진행한 끝에 간신히 잠정합의안을 내놨다.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약 312시간의 파업(부분·전면 포함)에 나섰고, 추산된 손실액은 약 3000억원에 달한다. 손실이 커지자 사측은 공장 문을 닫는 ‘셧다운’과 야간조를 중단하는 ‘부분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도 했다.
특히, 노조는 지난달 16일 도출했던 1차 잠정합의안을 51.8%(1109명)의 반대로 한 차례 부결시킨 바 있다. 당시 총 조합원 2219명 가운데 1023명이나 찬성(47.8%)표를 던졌으나 86표 차이로 통과되지 못 했다.
전면파업과 직장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뚫고 도출된 이번 2차 잠정합의안은 기존 1차 잠정합의안 내용을 기반으로 ‘노사 상생 공동선언문’이 더해졌다. 노사간 평화를 유지해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또한 모범적인 노사 관계를 만들기 위해 그 동안의 갈등 관계를 봉합하고 향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함께 지켜갈 것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부산공장이 르노그룹 내 최고 수준의 생산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 등 다른 자동차회사 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르노삼성 노조가 1년 넘게 강한 투쟁을 버인 이유는 ‘근로조건’ 때문이었다. 사측에 기본급 동결을 조건으로 근무강도 개선을 위한 충원과 배치전환 절차 등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자 파업으로 맞선 것이다.
르노삼성의 이번 잠정합의안은 노사 모두 한 발씩 양보한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노조는 기본급 동결을 수용하고도 전환배치 ‘합의’ 전환에 실패했지만, 80% 정도의 성과는 얻었다는 게 내부의 분위기다.
주재정 르노삼성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인더뉴스와의 통화에서 “기본급을 동결한 것은 최악의 결과”라면서도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조합원들이 물리치료를 받게 된 것과 중식시간이 늘어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 근무강도 개선 위해 60명 충원...물리치료 조합원 대체인력
합의안을 세부적으로 보면, 노조가 요구했던 근무강도 및 배치전환 절차 개선이 사실상 받아들여졌다. 근무강도 개선을 위해 요구했던 직업훈련생 60명(사측은 30명 제시) 충원이 수용됐고, 주간조 중식시간도 기존 45분에서 60분으로 연장됐다.
특히, 새로 충원되는 직업훈련생의 경우 사측은 작업공정에 투입되는 ‘근태인력’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물리치료와 연차 사용을 위한 ‘여유인력’으로 요구했었다. 최종적으로는 ‘현장 근무강도 완화를 위한 직업훈련생 충원’으로 합의되면서 사실상 노조의 요구안이 수용됐다.
사측이 제시했던 근태인력은 기존 작업공정에 그대로 추가되는 인력이다. 반면 근무강도 완화를 위한 인력은 당장 작업공정에 투입되지는 않지만 물리치료나 휴식 등으로 결원이 생기면 이를 메꾸는 개념이다.
60명의 직업훈련생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지만, 작업편성 인력의 10%를 여유인력으로 충원하자는 노조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측은 이미 10%의 여유인력을 갖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노사는 정확한 작업편성률을 함께 조사하기로 했다.
또 1시간당 생산대수인 UPH를 기존 60대에서 55대로 낮추자고 했던 노조의 요구도 수용되지 않았다. 현대차 공장의 UPH가 평균 40~50대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근무 강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 전환배치는 내부 절차 만들어...유예기간 한달 두고 노사 협의
근무강도 완화와 더불어 핵심쟁점으로 꼽혔던 전환배치 개선 문제는 노조 측 요구가 더 많이 반영됐다. 단협에 ‘협의’로 명시된 전환배치를 ‘합의’로 바꾸자는 노조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지만 ‘프로세스에 따른다’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이에 대해 주 수석부위원장은 “그간 회사는 조합원들을 전환배치할 때 갑작스럽게 힘든 공정에 보내 희망퇴직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프로세스에 따른다라는 규정을 신설해 절차에 따라 전환배치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더 이상 임의대로 조합원을 전환배치할 수 없다. 바뀐 공정이 조합원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한 달간의 유예기간 동안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어기면 노조는 사측을 고소·고발할 수 있다.
◇ 성과급 지급 규모는 노사 입장차 뚜렷...1176만원 vs 750만원
르노삼성 노사는 이번 임단협에서 기본급 동결에 합의하는 대신 조합원은 물론 모든 직원들에게 보상금과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르노삼성이 사무 및 연구개발직에게도 임단협에 따른 성과급을 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보상금과 성과금 지급 규모는 사측과 노조간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사측은 기본급 동결을 조건으로 총 1176만원의 성과급을 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조는 사실상 750만원만 가져갔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기본급 동결에 따른 보상금 100만원과 성과 보상금 1076만원 등 총 1176만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성과금에는 ▲생산격려금(PI) 50% 지급 ▲이익 배분제(PS) 426만원 ▲성과격려금 300만원 ▲임단협 타결 통한 물량 확보 격려금 100만원 ▲특별 격려금 100만원 ▲임단협 타결 격려금 50만원 등이 포함됐다.
반면, 노조는 이익배분제는 임금협상과 관련이 없는 만큼 총 성과금 규모에서 450만원을 빼야한다는 입장이다. 복리후생 관련 금액으로 성과금 규모를 부풀려 회사가 많이 양보했다는 언론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르노삼성 노사는 이르면 8월 초부터 2019년 임단협 교섭에 돌입할 예정이다. 단체협약은 2년에 한 번만 협상할 수 있어 이번 교섭에선 임금에 대한 논의만 진행된다. 기본급이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600여명의 조합원들에 대한 임금 인상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