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이진솔 기자·장승윤 기자 | 남양유업이 1964년 창사 이후 57년 만에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내려놓으며 총체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대리점에 물건을 강매하는 ‘갑질경영’으로 쌓은 업보가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황당한 마케팅으로 폭발한 겁니다.
지난 28일 홍원식 전 회장을 비롯한 남양유업 오너가 전체 지분을 국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했습니다. 홍원식 전 회장은 남양유업 지분 51.68%를 갖고 있고 부인과 동생 등이 보유한 주식을 합하면 총 53.08%에 이릅니다. 공시에 따르면 주식은 37만8938주로, 계약 금액은 3107억2916만원입니다.
홍원식 전 회장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쇄신책을 내놓았지만 여론이 들끓으며 불매운동이 계속되자 내린 결단입니다.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대리점 갑질사태로 시작된 불매운동이 더 거세지면서 벼랑 끝에 몰린 모양새가 됐습니다.
◇대리점 갑질·과대광고·경쟁사 비방..끝없는 이미치 추락
남양유업 ‘흑역사’를 촉발한 건 ‘대리점 갑질 논란’입니다. 남양유업 영업 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욕설을 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녹취록을 통해 남양유업이 지역 대리점에 물건을 강매한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영업 사원 개인의 부도덕이 회사 수준으로 확대되며 논란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이후 실적 역시 곤두박칠쳤습니다. 대리점 갑질 사태가 벌어진지 1년 만에 적자전환했는데요. 2012년 영업이익 637억원에서 2013년과 2014년 각각 175억원, 261억원 영업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1994년 이래 최초의 적자 전환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겁니다.
이후 남양유업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검찰 고발 등을 거쳐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당시 홍원식 전 회장이 갑질 근절을 약속했지만, 대국민 사과에서도 경영진들만 공식 석상에 나타났을 뿐 직접 모습을 보이진 않아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여직원이 결혼하면 계약직으로 신분으로 바꾸고, 임신한 직원에 출산 휴가를 주지 않는 등 차별 논란이 불거졌는데요. 또 자사 제품을 과대광고하고, 타사 제품을 비방하는 등 비양심적인 마케팅 문제도 지적되면서 소비자들이 점점 등을 돌렸습니다.
오너 일가의 일탈도 계속됐습니다. 홍원식 전 회장은 2018년 차명주식 보유한 혐의로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외조카 황하나 씨의 마약 투약 사실이 알려지며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때 100만원을 돌파하며 ‘황제주’ 지위를 누리던 남양유업은 이 사건으로 인해 9년 만에 최저 수준인 50만원대 중반으로 폭락했습니다. 매일유업과 격차는 더 벌어져 매출액 차이가 7000억원까지 커졌습니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경쟁사 비방 논란’으로 또 한 번 홍역을 치렀습니다. 홍보대행사까지 써서 경쟁사 매일유업 등을 향해 ‘우유에서 쇠 맛이 난다’, ‘우유 생산 목장 반경 4㎞에 원전(원자력발전소)이 있다’는 등 비방 댓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오너 일가의 계속되는 갑질과 일탈에도 남양유업은 반성하기보다는 이를 숨기기 바빴습니다. 불매운동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자 남양유업은 회사 이름을 숨긴 카페 ‘백미당’ 등을 운영하거나 자사 제품에 기업명을 매우 작게 표시하는 노출 최소화 전략을 사용했는데요. 하지만 시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매 리스트를 공유하고 남양유업에서 위탁생산하는 타사제품까지 불매하는 식으로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은 갑질 사태 이후 계속 논란이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수습이 제대로 안됐다”며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남양유업이라고 씌어진 제품 외에 PB제품에서도 제조사를 찾아 정보를 공유하고 불매하는 등 소비자 신뢰가 굉장히 무너진 사례”고 말했습니다.
◇흑역사 정점 찍은 ‘코로나19’ 황당 마케팅..오너 일가 퇴진 결단
흑역사에 정점을 찍은 건 최근 불거진 코로나19 마케팅입니다. 남양유업은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는 과장광고를 했습니다. 지난달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해당 연구가 인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반박을 내놨습니다. ‘과장광고’ 논란이 커지면서 남양유업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세종시는 남양유업 세종공장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사전 통보한 상태입니다. 일종의 ‘예고’입니다. 해당 공장은 불가리스를 포함해 남양유업 전체 상품 약 40%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업정지 처분이 현실화하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홍원식 전 회장은 이달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또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러주지 않겠다면서 사실상 ‘오너일가 퇴진’을 공식화했습니다.
동시에 이사회에 속한 지종숙 이사와 홍진석 이사가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지종숙 이사는 홍원식 전 회장의 어머니이며 홍진석 이사는 장남입니다. 이어 7일에는 긴급 이사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경영쇄신을 추진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끊임없는 논란으로 지난 10여 년 간 남양유업의 실적은 크게 악화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매출액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1조원 아랫(9536억 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영업손실은 76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1분기 실적은 연결 기준 2309억원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0.3% 줄었습니다. 영업손실은 138억원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세종공장 영업정지 경고장이 날아오며 오너 일가가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비대위 체제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습니다.